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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하비 [물체주머니] 제15회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댄스/일렉트로닉 음반부문' 노미네이트

 

 

"일렉트로닉 옆에 댄스라는 단어를 붙이는 것이 당연해진 오늘날,

[물체주머니]는 전자음악이 ‘음악’이라기 보다는 ‘소리의 실험’이던 역사를 새삼 반추하게 한다.

현대 문명의 상징이었다가 이제는 노스탤지어를 표현하는 매개체가 된 브라운관 모니터를

기본 모티브로 자유롭게 생각을 뻗고, 이를 다시 야심찬 소리의 ‘장’ 안에 가두는

이 음악들은 그래서 더욱 남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물체주머니]는 어쩌면 해석이나 감상이 아닌 ‘체험’을 요구하는 음악이며,

한국 대중음악이 아닌 전자음악의 역사와 맥락 안에서 더욱 온전히 이해될 걸작이다."

 

- 선정위원 김영대

 

Mojave nominated for 'Best Dance/Electronic Album'

of the 15th Korean Music Award 2018

 

 

 

 

 

2018 제15회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

2018년 2월 28일(수) 19:00

구로아트밸리 예술극장

녹화방송: 3월22일 EBS교육방송

 

 

 

링크 -

제15회 한대음 장르별 후보

제15회 한대음 모하비 [물체주머니]

[물체주머니]CD판매처(오디오로그)

 

 

 

                 

 

 

‘그는 단순히 기타를 연주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그 안에 살고 있었다.’ 오래 전 닐 영의 인터뷰에서 그가 지미 헨드릭스에 대해 얘기했던 말을 기억한다. 언제부터인가 모하비라는 사람을 바라보며 그 말이 떠오르곤 했다. 나는 그가 ‘Desert fish(사막의 물고기)’라 부르는 그의 작업실이자 그가 살고 있는 방에 들어가본 몇 안 되는 사람들 중 한 사람일 것이다. 그의 프라이버시 때문에 구체적인 형용을 삼가 하지만 나는 그가 일상의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는 이 공간 안에서 과연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의아했다. Desert fish는 마치 기계로 된 로봇의 몸통 안을 비집고 들어와 있는 것처럼 수많은 전자악기들로 가득 차 있었고 겨우 몸을 통과할 수 있는 좁은 미로를 따라 그 안을 이동할 수 있었던 건 천장까지 세워진 높은 rack에 모든 장비들이 쌓여 있었기에 그나마 가능한 일이었다. 그는 이미 자신의 삶의 전부를 몽땅 음악에 내주고 있었다. 그런 공간에서 휴식을 취하고 잠을 자는 등 물리적으로나 심리적으로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하기는 쉽지 않아 보였기 때문이다. 나는 종종 그와 장시간의 대화를 나눈다. 어떤 때는 대화 자체가 흥미진진해서 대여섯 시간이 넘도록 신이 나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어떤 때는 간단히 공유하고 끝낼 수 있는 대화에 그 만큼의 시간을 들여야 할 때도 있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가끔씩 desert fish안에 들어와 있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다. 그렇다고 그가 이해하기가 난해한 사람이거나 폐쇄적이거나 어딘가 몹시 뒤틀려있는 사람은 아니다. 그는 진지하고 꾸밈없이 솔직하며 자신의 것을 타인과 세상과 나눌 준비가 되어있는 투명한 사람이다. 단지 그는 너무 오랜 시간을 desert fish안에서만 살아 왔다. 아이팟이 아닌 오래된 스테레오 전축과 함께, 테크토닉 유행을 몰고 온 최신 프렌치 하우스가 아닌 반젤리스와 조르지오 모르더의 레코드와 함께, 첨단 소프트웨어와 디지털 음원들이 장착된 매킨토시 컴퓨터가 아닌 무그와 펜더 로즈와 함께 그는 여전히 그 안에 살고 있다. 그곳은 시대와 국적에 관여 받지 않는 그런 곳이다. 어떤 영화의 대사처럼 모하비는 ‘디지털 시대의 아날로그형 인간’이다. 그가 연구하고 추구하는 음악적 이상향의 근간에는 언제나 아날로그 시대의 짙은 향수와 모티브가 존재하며 또한 그것이 그의 음악적 열정의 원동력으로 작용한다.

 

모하비의 첫 번째 음반인 ‘테크노전자음악잡동사니’가 나온 지 이제 10년이 되었다. 그는 얼마 전 그의 10년 동안의 음악생활을 기념하고 정리하는 의미에서 그간 발표했던 곡들과 새로운 미발표 곡들을 모아 ‘미드나잇 라디오 소울’이란 음반도 제작했다. 10년 전 그는 첫 음반을 발표하고 ‘한국 최초로 테크노 음반을 낸 뮤지션’이란 타이틀을 받았다. 돌아보면 그것이 과연 어떤 특별한 의미를 갖는지는 모르겠으나 아마도 그의 초기 음악생활에는 다소 이점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 최초로 ~을 한‘이란 수식어구가 갖는 얼리 어답터나 트렌드 셋터로서의 면모, 그리고 거기서 파생되는 첨단과 cool~한 이미지는 그와 거리가 있다. 그런 의미와 결과적인 측면에서 어쩌면 첫 단추가 잘못 끼워졌다. 그 수식어구가 사실일지는 몰라도 10년이 지난 지금 오직 트렌디와 스타일리쉬에 죽고 사는 한국의 클럽문화와 한국 일렉트로닉 음악계의 현주소에서 그는 소외되었다. 그렇다면 모하비는 10년 전 한국 최초로 뭔가를 했지만 그 이후에는 이렇다 할만한 결과물이 없었는가. 전자음악가 모하비의 음악은 정작 그의 세 번째 앨범인 ‘머신키드’에서부터 제대로 평가 받아야 한다. 그 이전의 음악은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하던 시기라면 머신키드에서부터는 모하비는 그것을 찾은 듯 보인다. 자신의 색깔을 낼 줄 알았고 또 그만의 존재의미를 갖는 유니크한 결과물을 냈다. 머신키드, 시실리의 친구들, 맨홀 스피커, 그리고 미드나잇 라디오 소울에 이르기까지 모하비의 음악 속에는 특유의 서정성과 사색적이고 정적인 테마, 그리고 소리에 대한 편집증적인 탐구가 완성되어 가고 있었다. 많은 일렉트로닉 뮤지션들이 그루브를 지향하며 달콤한 트렌디 음악을 쫓고 있을 때 모하비는 그것과는 무관한, 아니 오히려 역행하는 전자음악 본질의 오리지널리티를 찾으려 애썼다. 그러나 애매한데 갖다 붙여지는 ‘실험음악’이란 허울로, 곧 대중성이 결여된 자위적인 음악이라는 치부로 그 음반들은 철저히 인더스트리의 관심에서 외면당했고 대부분 모하비 본인의 자비로 제작되고 발표되었다. 당연 지사 홍보, 마케팅, 유통 등 시장원리에 부합되는 써포트도 못 받았으니 그는 급기야 자신의 음악을 홍대 앞 프리마켓으로 가져가 보따리장사 식의 판매를 시작했다. 음악가가 자신이 만든 음악을 들려주고 지나가던 이들이 그것을 듣고 원하면 판다, 어찌 보면 요즘 시대에 얼마나 희화될 수 있는 장면일까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 모든 얕은 상술과 야합이 난무하는 시대에 얼마나 스트레이트하게 원시적이고 일차원적으로 순수한 방식이 아닐까. 판매의 결과는 어땠을까? 매진이었다. 물론 그 수는 만장, 십 만장의 단위는 아니다. 그러나 모하비는 일주일에 한번씩 그곳에 나가 1년여에 걸쳐 그가 만든 거의 모든 음반을 팔았다. 아니 사람들이 사간 것이다. 땅바닥에 자리를 펴고 앉아 포터블 오디오에서 낯설고 이상한 음악을 틀고 있는 도인 같은 외모의 그 사람이 신기해서 사람들은 돈 만원씩을 주고 그의 음악을 샀을까? 모하비는 그곳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그의 음악을 사기 위해 멀리 부산에서 온 중년의 외국인도, 팬이라 하며 음반을 종류별로 사갔던 십대 소녀들,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을 위 한 잡지에 기사를 싣고 싶다며 인터뷰를 요청했던 미국인 기자 등. 그의 무모하기만 했던 프리마켓의 판매활동은 작지만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음반을 예상외로 많이 팔아서가 아니라 그곳에서 그는 음악가로서 인정을 받았기 때문이다. 또한 그것은 그가 한국 최초의 무엇이라는 인정이 아닌 그가 빚어낸 제품에 대한 인정이기에 의미가 있다. 혹자는 이 나라에도 모하비와 같은 음악인, 또 모하비의 음악이 기호에 맞는 사람들 등 각양각색의 사람이 존재할 수 있는데 그 소수의 예외적인 현상을 가지고 웬 호들갑이냐 할지 모르지만 바로 그것에서 비롯될 수 있는 다양성이 우리가 필요한 문화적 토양이다.

 

정치계와는 달리 단일민족국가라는 뿌리 깊은 자의식에서 비롯된 문화적 획일화 습성은 한 나라를 한 동네처럼 만들었다. 공영방송국 몇 개가 모든 대중문화를 지배하고 음악의 장르는 가요라는 하나의 범주 아래 무시된다. 지역별 리그에는 관심 없지만 국가 대항전에는 온 국민이 하나 되어 열광을 한다. 로컬씬은 존재하지 않고 모든 것은 서울이란 작은 도시로 모이고 서울은 모든 것을 공급하고 지배한다. 국내에서 품질을 인정받지 못한, 아니 판단할 능력과 소양이 안되어 인정할 수 없었던 문화 상품도 해외에서의 가시적 성과를 거두면 내용의 분별력 없이 민족주의적 코드가 작용한다. 한국 최초로 무엇을 했다는 사실만으로 마치 가장 혁신적인 예술가가 될 수도 있으니 우리의 음악계는 진정한 창의력과 혁신 대신에 아직도 끊임없는 답습과 모방을 계속하고 있다. 마치 누가 누가 잘 따라 하나 식의, 소외 혹은 단절된 문화 변방국의 현실을 오히려 역이용하는 방식이다. 내용보다는 껍데기가 상품인 것이 우리 문화계의 현주소이다.

 

 

 

kim yull 2008 new y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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