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jave voltage diary

제목  카이로의 가장 위대한 밤
이름  mo
첨부


삶의 가장 위대한 순간은 스맛폰이 1%를 남기고 스스로 꺼질때 찾아온다. 심지어 말끔한 옷이 아닌 맨발 슬리퍼에 흰 츄리닝을 입은 무방비 상태에서 찾아온다.

그렇게 밤소풍에 불려갔다.

2020년 8월 31일. 무더위가 잠시 꺾인 저녁 7시경. 정육점 일은 忠臣 오쌔마와 희셈 전 부인 아들 함마드에 맡겨놓고(이걸로 엄청 삐졌다) 4시간 정도의 짬을 내어 카이로 시내중심부 ‘사예드 엘 피사’ 사원 옆 카페에서 희셈은 그토록 소중히 지켜온 가족들만의 시간을 보낸다. 그 가족 구성원에 민규가 어느덧 차지하고 있었다.

일년내내 연중무휴 고생고생 장사만하다 찾아온 오아시스같은 밤 나들이었다. 이게 얼마나 모두에게 신명난 외출이었는진 봉고차 안에서 식구들이 나를 갖고서 아랍어로 장난도 치고 아낙네들의 왁자지껄 웃음꽃이 쉴새없이 핀 것만 봐도… 집안의 가장으로서 과묵하게 앉아가던 희셈도 속마음은 안먹어도 배불렀으리라. (이전에 얘길했듯 난 여기서 그들의 희로애락을 전부다 봐버렸다. 그래서 안다)

그간 1년, 희셈은 나의 삶(심지어 여행의 양상까지)을 바꿔놨고 나또한 몇몇 주변 이웃의 삶을 뜻하지않게(?) 변화시켜 버렸는데 어쩌다 영화 바그다드 카페 같은 일이 이곳 아인샴스에서 벌어지고 만 것이다. 이 날의 나들이는 나와 그의 가족의 삶이 어떤 불가사의한 사랑의 화학작용으로 영원히 다른 방향으로 변화되었단걸 최종 확인하는 날이었다.

한국에 계신 지극히 사랑하는 노부모님(80세,75세)의 남아있는 날들을 매일같이 의식하며 큰 근심 속에 지낸다.

한국인 평균수명을 감안해보면, 앞으로의 10년은 내 중년의 인생에서 매우 중요한 분수령이 될 것이라 본다. 사랑하는 이와 작별하고 혼자 남게 되었을 때. 홀로인 내가 되돌아갈 마지막 안식처를 찾은 날이 바로 2020년 8월 31일 밤이다. 카이로의 가장 위대한 밤이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차 속에서 희셈이 이 날 또 어김없이 내게 정을 준다.(그는 아무리 바빠도 내게 하루에 꼭 한번 정을 주는 행동을 한다. 내가 이 곳에 오래 머무는 이유다). 그는 배가 출출했는지 차를 갑자기 세우더니 나만 데리고선 어느 식당서 파는 우유푸딩에 견과류가 들어있는 차갑고 달콤한 디저트를 같이 서서 퍼먹는다. 희셈은 1분안에 뚝딱 먹어치운다. 덕분에 난 제대로 안씹고 2분을 내서야 가까스로 비웠다. 어릴적 사촌친구 진욱이랑 서울-부산행 무궁화호 열차에서 내려 필수코스인 동대구역 가락우동을 정차 3분안에 먹어치우던 그 스릴을 카이로에서 다시 경험할줄은!!!

예상치 못한 바이러스로 아인샴스에 말뚝을 박고 여행과 시내 외출을 삼가다보니 이 날 카이로 시내 야경을 희셈과 운전석에 나란히 앉아 밖을 내다보는데 카이로 야경이 이렇게 아름다웠던가. 희셈도 기분이 좋은지 여기저기 손가락을 가리키며 내게 지명들을 가르쳐준다. 장소를 가르킬 때마다 내 반대편 어깨를 톡톡치며 장난을 친다.

무엇보다 희셈에게 찾아온 놀라운 변화는 무뚝뚝한 그가 곧잘 내 앞에서 음치의 목소리로 이집트 유행가를 부르기 시작했다는거. 이 날 봉고차 안에선 내가 앞 가사를 허밍으로 부르니 그가 뒷 가사를 맞받아쳐 허밍을 부른다. “우옷! 아모 희셈ㅋㅋ ” , “아 왜 웃엇!!”. 내가 카이로에 오기 전까지 이웃과 그의 가족 그 어느 누구도 그런 희셈의 모습을 본 적이 없다.


- Ahmad Hisham Ali Kordi (Mingyu Soh)





(모하비 페북에서 옮겨옴 2020.9.4)
2020-09-05 08:5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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